Whisky and Drink
위스키와 주류? 주류와 음료?
도대체 뭘 판다는 건지…
▲ 일러스트 박상철
한국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의 영어 능력 향상을 원한다면 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사용하는 영어를 점검하고 관리하는 부서를 신설할 필요가 있다. 한국어 표지판을 장려하는 캠페인을 펼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서울의 어느 거리를 지나는데 간판 하나가 눈에 띈다. ‘Whisky and drink’. 흔하디 흔한 카페의 흔하디 흔한 영어 간판이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양주와 음료 일절’쯤 되겠다. ‘이 양반이 이번엔 또 무슨 트집을 잡으려고 그러나’ 할 것이다. 맞다. 트집, 좀 잡겠다. 이번 트집의 주제는 ‘엉터리 영어 간판’이다.


알쏭달쏭 한국 간판
주류 뜻하는 ‘drink’를 엉뚱하게 음료로 사용
디지털 카메라를 ‘돼지털 카메라’로 광고하는 격


영어권 문화에서 ‘whisky’는 ‘drink’의 일종이다. 아무런 수식어 없이 사용되는 ‘drink’엔 ‘주류(酒類)’란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굳이 ‘drink’를 활용해 ‘음료’를 표기하려면 ‘non-alcoholic drink’라고 써야 정확하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엉뚱하게 ‘drink’에 음료란 의미를 갖다 붙이고 양주의 한 종류일 뿐인 ‘whisky’를 마치 모든 양주의 대명사인 양 사용한다. 제대로 된 콩글리시인 셈이다. 이러니 한국어를 할 줄 모르고 한국 문화에 익숙지 않은 이들이 이런 간판을 접하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국에 꽤 오랫동안 거주해온 외국인들이야 ‘재미있는 한국식 간판’이라 생각하며 무심히 넘기겠지만 갓 입국한 외국인이라면 ‘도대체 여기서 뭘 판다는 걸까’ 갸우뚱거리며 주변 사람을 붙잡고 물어봐야 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잘못 사용되는 영어는 한국 사회 곳곳에 악영향을 끼친다. 비단 사업상 회의나 일상 대화에서뿐만이 아니다. 한국은 부정확한 영어가 그야말로 사방에 흩뿌려져 있는 나라다. 도로 표지판이나 상점, 포스터 등 어느 하나 예외인 것이 없다.

“그게 그렇게 심각한 문제야?”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답하겠다. “물론, 너무나도!” 당신이라면 디지털 카메라를 ‘돼지털 카메라’라고 광고하는 기업의 제품을 구입하겠는가? 누가 봐도 그 회사는 전문성이 떨어진다. 그곳에서 출시된 제품 역시 대충 만든 싸구려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므로 사업을 시작해 무언가를 팔려고 계획 중이라면 섣불리 제품 이름을 짓기 전에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만든 제품을 손에 쥔 고객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자기가 만든 게 뭔지 제대로 번역하기조차 귀찮았던 모양이군. 아니면 능력이 안 되거나!’


박테리아 아이스크림 bacteria icecream?
유산균 학명(學名) 그대로 제품명에 붙여 판매
‘육회(肉膾)’를 ‘Six Times(6회)’로 쓴 곳도


영어로 된 식품명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다. 유산균 아이스크림을 팔면서 외국인을 배려해 진열대 아래 ‘lactic acid bacteria ice cream’이라고 써놓으면 과연 얼마나 많은 외국인을 끌어 모을 수 있을까? ‘lactic acid bacteria’는 유산균의 학명일 뿐, 일상생활에 쓰일 만한 용어는 아니다. 그 명칭은 스낵류보다는 화학 실험에 훨씬 더 어울림직하다.

동음이의어를 영어로 직역해 엉뚱하게 병기해놓은 경우도 종종 발견된다. 이를테면 육회(肉膾·a dish of minced raw beef)를 ‘Six Times(六回)’로 번역한 고깃집 메뉴 같은 것들이다. “웃자고 한 일”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옹색한 모양새는 어쩔 수 없다. 어쨌거나 엄연한 오역이고, 그 메뉴는 외국인도 얼마든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조금만 더 자부심을 갖고 심혈을 기울이면 이런 어이없는 실수는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 그런데도 한국의 자영업자들은 대체로 이런 노력에 소홀하다. 물론 영세한 규모의 개인사업자라면 그로 인해 겪는 수모가 미미할 것이다. 그러나 그 주체가 대기업이라면…? 브랜드명을 결정할 때나 해외용 마케팅 문서를 작성할 때는 최대한 신중하고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한다.


버스 내리는 곳 Get Off ?
대화에서만 쓰는 단어가 공공장소에 버젓이
고속철 승차권은 ‘티켓’인데 ‘보딩 패스’로


고속철도(KTX) 기내방송에서는 늘 승객들에게 ‘보딩 패스(boarding passes)’를 보여달라고 요구한다. 반면 부산시외버스터미널은 버스 타는 곳을 ‘Take a bus’로, 버스 내리는 곳을 ‘Get Off’로 각각 표기해놓았다. ‘KTX 버전’이 쓸데없이 격식을 따진다면(속도가 아무리 빠르든 기차 승차권은 그냥 ‘티켓(ticket)’일 뿐이다) ‘버스터미널 버전’은 지나치게 약식이다.

‘get off’는 일상 대화에서, 그것도 앞뒤 맥락을 재고 따져야 ‘(버스에서) 내리다’로 해석될 수 있는 숙어다. 결코 공식적인 안내표지판에서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이 아니다.

물론 ‘한국통(通)’인 베테랑 외국인들은 이런 표지판을 보고도 싱긋 웃곤 지나칠 것이다. 그러나 매주 수천 명이 이용하는 공공장소에 버젓이 ‘Get Off’란 표지판이 붙어 있는 건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을 처음 찾은 외국인이 겪을 당혹스러움은 둘째 치고라도 해당 장소를 운영하는 공공기관의 성의 부족이 여실히 드러나는 광경이기 때문이다.


‘Hangang Park’ 가봤더니
 녹지 갖춘 공원인 줄 알았는데 강변따라 길만
‘park’보다 ‘Riverside Walk(강변길)’로 바꿔야


이런 장면을 한번 상상해보자. 서울 시내 모 거리를 걷던 한 무리의 외국인이 ‘Hangang Park(한강시민공원)’란 안내표지판을 발견했다. ‘근방에 서양식 공원이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한 그들은 표지판의 방향대로 공원을 향해 부지런히 걷기 시작했다. 얼마 후 마침내 목적지에 이른 그들은 어리둥절했다. “도대체 어디가 공원이라는 거지?”

물론 한강시민공원엔 길다란 자전거 도로와 주차장, 나무와 꽃으로 조성된 녹지공간이 있긴 하다. 당연히 한국어로 ‘공원’이라 지칭하는 데 아무 무리가 없다. 그러나 서양인의 눈에 비친 그곳의 풍경은 그들이 머릿속에 그려온 공원과는 거리가 있다. 이 경우 ‘Park’보다는 오히려 ‘Riverside Walk(강변길)’로 번역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당연히 표지판도 ‘Hangang Park’가 아니라 ‘Hangang Riverside Walk’로 바꾸는 편이 좋다.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단어와 단어를 일대일로 직역하는 것이 얼마나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기업도 마찬가지
글로벌 기업의 슬로건도 어색하고 세련되지 못해
좋은 말만 이어 붙인다고 세계 무대에서 통하나


조잡하고 부주의한 영어 사용으로 치면 이른바 ‘재벌’로 불리는 한국 대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경기 수원시에 있는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에는 다음과 같은 슬로건이 붙어 있다. “Global Company through Superior Quality Challenge!” 모르긴 해도 삼성 측은 “최고의 품질로 글로벌 기업에 도전한다!” 정도의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장은 문법적으로는 큰 무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어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단 단어 첫머리마다 대문자를 사용한 것부터 이상하다. 대기업의 마케팅 슬로건이라면 응당 신중에 신중을 기해 영어 단어를 이리저리 조합해보고 발음도 해보며 최대한 쉽고도 세련된 표현으로 완성시켜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 문장은 어쩐지 급하게 직역한 투가 역력하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런 증상을 보이는 나라가 한국 말고도 꽤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이나 일본 역시 비슷한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잉글리시닷컴(English.com)’이란 사이트에 접속하면 일본이나 중국에서 주로 발견되는 우스꽝스러운 엉터리 영어 표현들을 찾아볼 수 있다.(아쉽게도 한국에서 사용되는 표현까지 나와 있지는 않다.)

한국은 중국처럼 잘못된 영어 사용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면 나라 전체에 한층 지적인 이미지를 입히고 국제화 시대에 걸맞은 위용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과거 어느 때보다 해외 투자 확대에 강한 의지를 보이는 현 정부 체제에서라면 그렇게 어려운 문제도 아니다.
 
정부가 나서라
엉터리 제품 광고… 외국 투자자가 보면 ‘아마추어 국가’
마케팅 영어 전담부서 신설… 한글간판 캠페인도 벌이길


거리에서, 광고에서, 혹은 공공장소에서 시도 때도 없이 마주치게 되는 잘못된 영어 표현은 잘하면 꽤 재미있는 유머 소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 치명적인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소규모 기업은 으레 자사 제품 광고에 몇 가지 재미있는 영어 단어를 고명처럼 얹어 조금이라도 기발한 마케팅을 시도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산만하고 우스꽝스러운 표현을 사용할 경우 광고 자체의 의도가 흐려지는 것은 물론 전문성까지 훼손되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러므로 영어를 이용해 상표와 슬로건을 만들고 카탈로그를 제작할 계획이라면 최소한 인쇄 직전에라도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전문가와 함께 꼼꼼하게 단어 하나, 표현 하나까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대단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일도, 엄청난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일도 아니다. 약간의 번거로움과 시간만 투자하면 된다.

▲ 각종 간판들로 어지러운 도심가. 간판에 사용되는 영어에도 무심결에 잘못 사용되고 있는 게 적지 않다. (photo 조선일보 DB)
물론 한국을 방문한 대다수의 관광객은 한국에서 마주치는 콩글리시나 광고 속 잘못된 영어 표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웃어 넘길 것이다. 그러나 만약 투자 목적으로 한국을 찾은 기업가라도 마냥 재미있어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 이런 경험은 ‘코리아 = 아마추어 국가’란 인상을 심어 투자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한국인은 아름답고도 독특한 그들만의 고유 언어인 ‘한글’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업들은 거의 모든 제품군에 걸쳐 영어 표현을 남발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현상이 외국인의 눈에 매력적으로 비칠 리 없다. 자기 나라 제품이 엉터리 영어를 잔뜩 뒤집어쓴 채 외국인에게 노출되고 있다는 걸 아는 한국인 입장에서도 이는 부끄러운 일이다.

한국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의 영어 능력 향상을 원한다면 기업이나 공공기관이 마케팅 단계에서 사용하는 영어가 올바른지 여부를 점검하고 관리하는 별도 부서를 신설할 필요가 있다. 공공 장소 표지판이나 광고 문구를 만들 때 한국어 사용을 장려하는 캠페인을 펼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무슨 일이든 모범이 될 만한 선례가 필요한 법이다. 이 경우 공공기관 홈페이지나 도로표지판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 것부터 제대로 만들어놓고 대상을 점차 늘려나가도 늦지 않다. ‘현위치’를 ‘the present situation(정세, 근황)’으로 번역해놓은 시가도(street map)는 실소를 자아낸다. 그러나 그 지도가 지방자치단체의 작품이라면 그저 웃을 일만은 아니다. 심각하게 문제의식을 느끼고 즉각 고쳐야 한다. ‘대기업은 물론 정부기관에서조차 콩글리시 투성이 마케팅 자료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라’. 어릴 때부터 쉴새 없이 영어 강박증에 시달리는 한국의 어린 학생들 눈에 이런 모국이 어떻게 비칠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 팀 알퍼(Tim Alper) | 영국 출신 저널리스트로 현재 코리아IT타임스(ittimes.co.kr) 에디터. 영자지 코리아헤럴드·코리아타임스·영국 일간지 가디언 등에 칼럼 기고. 파고다어학원 영어 강사 역임.
번역 =  최혜원 기자 happyend@chosun.com

출처 : http://blog.daum.net/monterey/8390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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