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은 한국어 전혀 못해도‘당당’
한국인은 영어 조금 하면서도‘쩔쩔’
- ‘백인’이면 다 미국 사람?
비영어권 외국인도 많은데 으레 ‘영어하는 사람’
한국어 능숙한데도 확인 않고 무조건 영어로
거리에서 외국인과 마주쳤을 때 ‘저 사람은 당연히 영어로 말하겠지’라고 지레 짐작하는 건 경솔한 생각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대부분의 한국인은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한다. 물론 서양인처럼 보이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영어권 국가 출신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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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hoto 이경호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의 국적은 상당히 다양하다. 그리고 한국인의 눈에 ‘미국 사람’처럼 보이는 이 중 많은 수가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 출신인 것이 현실이다.
이들 중 몇몇은 영어보다 한국어를 더 능숙하게 말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외국인이라 해도 한국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엔 한국어로 말을 거는 편이 더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만약 그들이 한국어로 말을 건넸을 때 알아듣지 못한다면 그때 가서 영어를 사용해도 늦지 않다. 그러나 외국인을 대할 때 이런 태도를 보이는 한국인은 그리 흔치 않은 것 같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한국 역시 급속도로 세계화되고 있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수가 계속 늘어나면서 다문화가정 등이 새로운 사회문제로 대두될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인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모든 사람이 영어권 국가 출신이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안이한 분류법 아닐까?
얼마 전 업무 때문에 한국에 들른 일본인 친구와 서울 시내를 걷다 길을 물어보려고 한 슈퍼마켓에 들렀다. 영국인인 내 한국어 실력은 신통치 않은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말을 걸었다. 그러나 점원은 나한테가 아니라 한국어라곤 한마디도 모르는 내 친구에게 한참이나 길을 설명했다. 생김새가 한국인과 비슷한 그를 한국인으로 착각한 것이다.
외국인에 대한 이중 잣대
한국어 배울 생각 않는 외국인엔 관대하면서
말 걸면 피하고 옆에 있어도 ‘투명인간’ 취급
한국에서 외국인으로 지내다 보면 심심찮게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곤 한다. 많은 한국인들이 외국인을 마치 ‘투명인간’ 대하듯 다룬다. 한국어를 어느 정도 말할 수 있는 외국인이라면 이런 상황이 무척 당혹스럽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외국인 A가 한국인 친구와 함께 한국 음식점을 찾았다. 그들은 각자 원하는 메뉴를 한국어로 주문한 후 물 한 잔을 청했다. 공교롭게도 A가 주문한 음식은 상당히 매운 한국 음식이었다. 그러나 점원은 외국인은 마치 그곳에 없다는 듯이 무시한 채 동행한 한국인에게 물었다. “이 분 매운 거 먹어요?”
물론 한국을 찾은 대부분의 외국인이 별도의 한국어 공부를 하지 않는다. 일부는 한국어를 배울 필요를 못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점을 감안한다 해도 외국인을 대하는 한국인의 태도는 다소 무례하다. 만약 당신이 영어권 국가를 여행하는 관광객이라면 “Thank you”나 “Hello” “Goodbye” 같은 간단한 영어 표현은 공부해 갈 것이다. 외국인도 다르지 않다. 최소한 몇 주 이상의 일정으로 한국에 머무는 외국인이라면 그들 역시 최소한의 의사소통에 필요한 한글 표현을 습득하려 노력해야 한다. 다행히도 히라가나와 가타가나, 한자까지 뒤섞여 있어 복잡하기 그지없는 일본어나 음과 뜻을 일일이 따로 외워야 하는 중국어와 달리 한글은 비교적 배우기 쉬운 언어다.
훈민정음 언해본에 의하면 세종대왕은 당시 글이 없었던 평민도 쉽게 배울 수 있는 언어를 만들기 위해 한글을 개발했다고 밝히고 있다. 만약 한글이 한국인이 쉽게 배울 수 있는 언어라면 외국인이라고 해서 어려울 것도 없다. 한글 초성 ‘ㄱ’은 영어 알파벳 ‘g’에 해당하고 중성 ‘ㅔ’는 영어 알파벳 ‘e’에 해당하므로 둘을 합치면 ‘게’가 되는 것 아닌가. 한글을 배우는 건 로켓 과학처럼 까다롭고 복잡한 일이 아니다.
한국인들은 한국에 머물면서 한국어를 배워보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 외국인에게 지나치게 너그러운 경향이 있다. 관광객은 물론 사업 때문에 한국을 찾는 외국인을 보면 으레 ‘그래, 저 사람들은 한국어를 못하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외국인 스스로도 마찬가지다. 각자 중요한 목적을 갖고 한국에 머물면서도 한국어에 까막눈인 이들이 많다. 그들은 하나같이 “한국어는 너무 어렵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영어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그건 결코 한국어를 못하는 데 대한 변명이 될 수 없다.
그러면서도 대부분의 한국인은 외국인이 다가가 무언가 물어보려고 하면 이미 얼굴이 빨개져선 저만치 도망가 버리곤 한다. 한국어를 배우지 않는 외국인을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그들이 영어로 말을 걸면 줄행랑을 치는 한국인을 접할 때마다 너무 혼란스럽다. 그럼 도대체 이 나라에서 외국인은 어떻게 의사소통하고 살아야 하는 걸까? 외국인을 외계인 보듯 하는 한국에서 외국인이 살아남으려면 단 한 가지 방법밖에 없어 보인다. 이 악물고 오랫동안 공부해 영어에 비로소 자신감을 갖게 된 극소수의 ‘용감한 한국인’을 친구로 삼는 것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대다수의 한국인이 최선을 다해 외국인과 마주치는 상황을 피한다. “그들은 한국어를 못하고 난 영어에 서툴기 때문”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아무리 겪어도 낯설고 불편하다.
외국인을 피하는 이유
영어에 자신 없어 실수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
자신감이 최대 무기… 틀리더라도 당당하게!
한국인이 외국인을 피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자신의 영어 실력에 확신(confidence)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새로운 한국인을 한 명씩 알게 될 때마다 그들은 한결같이 “영어 못해요”라며 손사래 치기 바쁘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영어 지식이 내가 갖고 있는 한국어 지식보다 훨씬 낫다는 걸 알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확신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뿐이다. 나 역시 한국어를 말할 땐 매번 어색하다. 이렇게 발음하면 바보처럼 들리진 않을까, 엉뚱한 곳에 엉뚱한 단어를 사용하면 어쩌나 늘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그 ‘걱정’의 도가 지나쳐 ‘공포’에 가깝다.
언어를 습득하는 데 있어 자신감은 처음이자 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은 너무 많이 들어 진부하지만 언어학습에 이만큼 딱 들어맞는 말도 없다. 만약 당신이 유럽을 여행하게 된다면 형편없는 영어 실력으로도 아무 문제없이 잘 지내는 사람들을 종종 마주치게 될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자신만만한 이유도 단 하나, 영어를 말하는 사람 앞에 자신의 ‘함량 미달 영어 솜씨’를 드러내는 걸 전혀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절대로 나쁜 일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밤낮으로 영어 문법책을 파고들지만 남들 앞에서 실수할까 봐 두려워 공공장소에서 영어로 말하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보다 이들의 영어 실력이 훨씬 더 빨리 일취월장할 것이다. ‘조용히 그리고 신중하게(quiet and studious)’란 학습의 법칙은 수학 공부엔 적합할지 몰라도 영어 공부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모국어를 익히는 과정을 살펴보면 그 시작은 언제나 말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문법이나 어휘 같은 개념이 존재할 리가 없다. 아이들이 말을 배우려고 노력하는 건 다른 이들과 의사소통하고 싶다는 근본적 욕구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영어를 잘 말하고 싶다면 아이들의 언어 습득 방식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말을 배워가는 과정에 접근하면 할수록 영어를 좀 더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시류를 거슬러 가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영어 교육 체계는 ‘거슬러 갈’ 필요가 있다. 학교 교육은 시험과 문법, 점수 따위에 엄청난 가치를 부여하며 학생들을 몰아붙이지만 정작 언어 학습의 핵심인 확신을 심어주는 데는 소홀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천성적으로 유럽인이나 미국인, 남미계 사람들에 비해 부끄럼을 많이 탄다. 그래서 외국어를 말할 때 자신감을 확립하는 과정은 더욱 중요하다. 그 작업은 한국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모든 영어교사가 첫 번째 수업 지도방식으로 염두에 둬야 한다. 그러나 설사 이런 생각을 하는 교사가 있다 해도 그 방침을 고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학교장과 학부모로부터 “학생들의 영어 점수를 높이는 데 집중하라”는 지적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 과시도 수줍음도 ‘적’
외국인 앞에선 벙어리… 한국인 앞에선 유창
남과 비교 말고 하나씩 배운다고 생각하라
한국에선 교실에서 이뤄지는 영어수업이 문화적 문제와 연관되기도 한다. 한국의 교실에서 학생 개개인의 영어 실력은 종종 신분(status)의 문제와 직결된다. 영어학원에선 잘못을 지적받을까 봐 입도 뻥긋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모두 알아차릴 만한 실수를 하는 게 사회적으로 큰 문제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이들은 막상 교실 영어 수업시간엔 자신의 실력이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걸 자랑하기 위해 동급생이 최대한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이야기하는 경향을 보인다. 해외연수나 어학원 등 영어 사교육 경험을 뽐내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는 것이나 수줍어하는 것 모두 언어를 배우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언어는 그저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그들의 생각을 알아듣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과도한 분석이나 막연한 공포 모두 한국인의 영어 학습을 저해하는 요소이므로 두 가지 모두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한국인은 본래 소심하고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그게 한국인의 매력이기도 하다. 그런 기질이 한국인을 친절하고 평화로운 민족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오히려 저주가 될 수도 있다. 새로운 언어를 익히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 국민들, 예를 들어 러시아인의 경우 천성이 활달하고 시끌벅적하며 공격적이다. 그들의 영문법 점수는 낙제점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언어 규칙 같은 건 무시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들의 유창한 영어 실력은 한국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비록 완벽하지 않은 영어라도 자신감 있게 구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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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러스트 박상철
- 그럼 이런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지금 당장 문화를 바꾸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바람직한 대안이 아니다. 한국인은 한국인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 그걸 바꿀 순 없다. 그러나 언어 학습에 관한 한 한국인은 자신감의 가치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 우선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과 마주쳤을 때 으레 가지기 쉬운 스스로의 콤플렉스부터 떨쳐버려야 한다. 교실에서 우리는 모두 학생일 뿐이다. 그러므로 섣불리 다른 학생과 자신을 비교해선 안 된다. 영어 시간에도 마찬가지다. 남의 흉허물을 사사건건 지적하기보다 서로를 격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어려서부터 ‘영어 전쟁’에 뛰어드는 아이들에게도 자신감을 길러주는 게 중요하다. 그 나이 때엔 시험을 잘 보기 위한 정보들로 머리를 채우는 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험이나 평가는 (사회적으로 사람들의 등급을 매기는 데는 어떨지 몰라도) 누군가의 어학 실력을 판단하기 위한 수단으로 적절하지 않다. 형편 없는 점수가 기록된 성적표는 당신의 자신감에 보기 좋게 ‘한방’을 날리기 때문이다. 그건 “당신은 영어를 잘 말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정말 영어를 잘 말하고 싶다면 눈을 감고 한번 떠올려보자. 당신이 어떤 과정을 거쳐 한국어를 익히고 배워왔는지 말이다. 그 기억 속에 시험이나 평가 같은 건 없을 것이다. 그저 “우리 딸(아들) 잘 한다”는 부모님의 친근하고 긍정적인 격려만 존재할 것이다. 영어도 다를 게 없다. 지금부터라도 매일 ‘나도 영어를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기르자. 서양인이 다가올 때마다 돌처럼 굳어버리는 한국인을 더 이상 양산하지 않으려면 한국의 영어 교육 체계에 ‘자신감’이란 요소를 이식해야 한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 영어교사를 위한 충고 |
1 자연스러운 상황을 만들어라
학생들이 자연스럽고 편안한 상태에서 서로의 견해를 활발하게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각자의 의견이 활발하게 제시될 수 있는 집단토론 수업을 계획하고 있다면 특히 유용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학습자에게 이 방법이 적절한 건 아니다. 때론 ‘식료품점에 갔을 때’와 같은 상황을 정해 역할놀이를 하게 하거나 간단한 드라마 스케치를 해보라고 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이것저것 시도해보면서 학생들에게 가장 적합한 수업 방식을 찾아나가야 한다.
어떤 상황을 설정하든 사전에 대본을 만들고 그걸 읽게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주되 그걸 기록하게 하지 말고 머릿속에서만 기억하도록 지시한다. 그런 다음 다른 학생들 앞에서 연기를 펼치게 한다. 교사는 연기 중 그들이 실수한 부분을 기록해 두었다가 수업이 끝날 때쯤 간단한 평가를 곁들여 지적해준다. 사람들 앞에서 영어를 말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수록 학생들의 자신감은 배가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2수업에서 ‘종이’를 없애라
영어뿐 아니라 모든 수업에서 교과서와 노트는 필수 준비물로 여겨진다. 그러나 영어수업에서만큼은 이 ‘공식’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수업에 사용하는 종이의 양과 수업의 효율성은 반비례한다고 보면 정확하다. 그러므로 수업 계획을 짤 때는 되도록 종이를 사용하지 않는 방법을 고민하자.
한국에선 수업시간에 교사가 문서로 된 자료, 일명 ‘프린트’를 나눠주는 순간부터 학생들의 사고 구조가 수학적으로 흘러간다. 수업내용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프린트에 적힌 단어의 뜻을 알아차리는 데 골몰하는 것이다. 교사가 독해나 작문 기술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종이 한 장 없이도 얼마든지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교과서와 노트가 수업에서 사라지면 학생들은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영어로 더 많은 말을 하게 되고 결국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3학생들을 떠들게 하라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수업 중엔 한 순간도 교실을 조용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 언어는 곧 의사소통이다. 따라서 어학시간에 무언가를 말하지 않고 시간을 흘려보내는 건 곧 수업을 허비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읽고 쓰는 업무는 과제로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다. 영어 수업을 할 땐 교사나 학생을 가리지 않고 쉴새 없이 떠들어야 한다. 대화가 끊이지 않는 교실을 만드는 것, 그것이 학생에게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 ‘영어 울렁증’ 이렇게 극복했다 |
“당당하고 좀 뻔뻔해지는 게 최고 ”
의류업체에 근무하는 이나정(35)씨는 영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외국 바이어를 상대해야 하는 업무의 특성상 영어 사용빈도가 높은 편이지만 입이 생각만큼 잘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부터 영어를 꽤 많이, 열심히 공부해왔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여전히 제 영어 실력에 별로 자신이 없어요. 외국인과 마주할 때마다 불편하죠. 틈날 때마다 영어 단어장을 파고들고 영국으로 단기 연수를 다녀온 후에도 나아지지 않더라고요.”
그러나 연수 시절 그를 변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제가 다니던 학원에 비영어권 국가에서 온 학생들이 많았어요. 스페인, 이탈리아인도 있었고 동유럽에서 온 친구들도 있었죠. 제가 보기에 그들의 영어 실력은 저와 별반 다를 게 없었는데 놀랄 만큼 빠르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영어를 말하는 거예요. 실수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어요. 그보다는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지 여부에 더 신경을 쓰더라고요.”
그런 광경을 처음 접한 이씨는 명백한 실수를 뻔뻔스럽게 건너뛰는 외국인의 모습이 꽤나 충격적이었다. ‘자기가 무슨 실수를 했는지 알고는 있는 걸까, 아니면 알면서도 신경을 쓰지 않는 걸까?’라는 생각에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들이 서툰 영어 솜씨로 사람들과 말하는 게 제 생각처럼 그리 이상한 게 아니란 걸 깨달은 거죠. 영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니 그게 당연하기도 하고요. 중요한 건 그들이 저나 아시아에서 온 다른 학생들보다 훨씬 많은 영어를 말하며 배우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어요.”
이후 이씨는 연수 때 학원에서 만난 외국인들을 흉내내며 영어를 배워나가고 있다. “실수할까 봐 머뭇거리지 않고 당당하게 말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결과적으로 예전보다 훨씬 빨리 그리고 효과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됐죠. 지금은 영어 공부에 ‘당당하고 뻔뻔스럽게’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고 확신합니다.”
/ 번역 = 최혜원 기자 happyend@chosun.com
팀 알퍼(Tim Alper) | 영국 출신 저널리스트로 현재 코리아IT타임스(ittimes.co.kr) 에디터. 영자지 코리아헤럴드·코리아타임스·영국 일간지 가디언 등에 칼럼 기고. 파고다어학원 영어 강사 역임.